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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운하우스 전지영 지음, 창비, 1만7000원
12·3 내란사태의 전개를 보면서 한편 궁금해지는 건 군인 가족의 근황이다. 행위자와 가족은 별개지만, 군인과 군인 가족은 적이 달라 보인다. 가족 결사체의 강도랄까. 군인의 부대 전출입에 따라 숱하게 이사하는 군인 가족에게, 나라는 함께 빚을 진다.
정보사령부 소속 정아무개 대령은 경찰 조사에서 문상호 사령관으로부터 지시받은 선거관리위원회 장악 명령을 진술했다고 상환 반대말 17일 알려졌다. “부대원 중 사업(공작) 잘하는 인원 2개팀, 팀당 15~20명을 소집하라”는 게 골자요, 이에 소집된 부대원들이 3~4일치 속옷과 양말, 세면도구 등을 챙겨 대기했다는 게 부연이다. 군의 범죄 의도와 실체를 좇는 게 사법이라면, 이 군인들의 속옷을 챙겼을 가족의 ‘정동’은 문학의 몫이 되겠다.
지난해 등단한 전지영 작가 구리월드디자인시티 의 첫 소설집 가운데 ‘쥐’를 되풀이해 읽은 까닭이다. 때마침 12·3 사태를 둘러싼 가장 내밀한 풍경 하나를 상상하게 한다.
제이(J)시에 위치한 해군 관사 단지가 무대다. 어지간히 알려진 대로, 관사 내 배우자와 자녀들은 군인 남편이나 아내의 계급을 따른다. 서열이, 지켜야 할 관례가 생긴다. 같은 대위 계급 아내들도 남편의 임관 시기 고용취업알선 에 따라 선후배가 된다. 작중 대위의 아내 윤진은 그런 호칭도 마뜩잖거니와 부당하다고 본다. 윤진은 관사 생활 초기 자기보다 어린 여성의 이름을 불렀다가 곤욕을 치렀다. 그녀의 남편은 윤진의 남편보다 기수가 높았다. 대개 직장까지 포기해 가며 가정에 ‘투신’하게 되는 아내들은 관사 내 나머지 여자 집단에 맞서기 어렵다. 비난과 따돌림을 감당하기 어렵다. “ 재학생대출 그들에게는 관사에서의 삶이 전부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런 탓인지 “관사 여자로 살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의뭉스러워”진다. 말인즉, 군 관련 소식에 있어 “남편들과 마찬가지로 군에 유리하면 과장해서 드러내고 불리하면 철저히 소문으로 치부했다.” 기실 군의 유불리도 아니다. 군에 있는 남편의 입장에 따라 ‘진실’은 보류하거나 묻거나 미연 알바시급계산기 에 외면하곤 한다. 운명을 결사하는 데엔 애초 모르는 게 나은 진실이 있다. 윤진은 그 “의뭉스러움”과 “마땅히 의심할 만한 일을 무턱대고 믿어서 밝혀져야 할 사실을 훼손하는” 사태가 “혐오”스럽다.
윤진은 군인인가, 민간인인가. 회색지대 윤진을 구별 지어 향후를 관찰해볼 법하지만 저자의 의중도 아닐뿐더러 타자화에 머물고 말 일이다. 억압된 위계 사회, 소문과 평판의 사회, 실체보다도 믿고 싶은 바를 믿는 사회, 진실보다 대오의 믿음이 중요한 사회는 관사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혼해 도합 8번 이사하고, 직장까지 포기한 채 아이 둘을 혼자 키우는 윤진의 삶은 군인 아내의 삶이며 더 많은 민간 여성의 삶이다. 관사는 이 세계의 그저 좁은 회로판인 셈이다.
비슷한 처지의 위관급 아내들이 자주 한자리에 모인다. 오후 4시께 또래 자녀들의 어린이집이 있는 단지 내 분수대다. 수많은 이야기가 오간다. ‘풍문’에 얽히지 않은 이 없으나, 하나같이 풍문의 진원이 될까 두렵다. 분수대 주변 이는 바람은 언제고 뒷말을 실어나를 것이다, 가족의 ‘공간’을 엄습하는 불온한 기척이 될 것이다.
윤진은 남편과 같은 구축함을 타는 대위의 아내 선과 그나마 가까워졌다. 선 또한 직장을 관두고 가족을 ‘수호’ 중이다. 두 가족의 운명이 바뀐 건 한순간이다. 한해 아홉달은 바다에 나가 있던 윤진의 남편이 어느 날 예고 없이 일찍 복귀하고, 나름의 경쟁이 필요한 파병 기회까지 얻게 된다. 반면, 선의 남편은 귀가하지 않는다. 앞서 두 대위 남편이 탄 구축함이 어선과 충돌했으나 모두 안전 회항했다는 얘기만 윤진은 들었다. 관사 여자들의 시선이 윤진을 짓누른다. 그리고 들려온 소식. 선의 가족이 “야반도주하듯” 관사를 떠났더라, 일요일 한밤중 사다리차를 댔더라….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소설은 애써 극적 전개를 꾀하지 않는다. 사건의 내막을 짐작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예상되는 바를 확인시킬 뿐이고 그럼에도 끝내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못하)는 윤진의 처지만 드러낸 채 태연히 종결되는 데서, 되레 독자를 압박한다. 결미가 매우 상징적이다. 관사엔 쥐가 적잖다. 다들 알 법하나 보지는 못해 짐짓 부정한다. 그 쥐들을 잡겠다는 대령의 아내가 있긴 하다. 선의 남편이 전역까지 한다는 소식을 들은 날 밤, 화단 여기저기 파놓은 쥐구멍에 모조리 불이 붙었으나 쥐새끼 한 마리 잡히질 않는다. 쥐는 ‘불편한 진실’이기에 드러나지 않아 편리한, 그러나 언젠간 모두를 좀먹고 말 실체라 하겠다.
태풍이 예보된 날, 군함과 어선이 충돌한다. 윤진의 남편은 ‘전원 구출’이라고 상부 보고하고, 불 붙은 어선을 뒤로한 채 회항했다. 선의 남편은 “구출되지 못한 선원이 더 있다”고 말한 이다. “명령에 따르고 임무를 완수하며 불의의 변수로부터 동료를 지키는 일.” 윤진의 남편이 말한 ‘살아남는 군인의 조건’이다. “대의와 위신이 중요한” 군에서, 일테면 용기 있는 비겁함.
“자신의 가족은 그 덕분에 관사에 남았다”는 윤진은 ‘진실’을 몰랐을까, 의뭉스러움을 혐오한다는 자신의 말은 진실일까. 윤진의 가족이 살아남는 조건은 살아남는 군인의 조건과 다를 수 있을까. 불법 계엄이 획책된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이 나라의 ‘윤진들’을 누가 어쩌다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인가. 어찌 또 견딜 것인가.
‘타운하우스’는 2023년 1월 두 일간지 신춘문예에 동시 등단하며 이름을 알린 작가 전지영이 올해까지 발표한 단편 8편으로 엮였다. 등단작 중 한 편인 ‘쥐’가 이 국면서 맥락화되리라 작가는 예상치 못했겠다. 현실 안팎으로 소설은 더 풍부하게 읽힐 구석이 많다. 마찬가지 사건보다 사건 뒤의 여파로서, 안식처라 믿었던 ‘공간’과 ‘관계’가 위협받는 중상층의 실태가 ‘말의 눈’ ‘난간에 부딪힌 비가 집 안으로 들이쳤지만’ 등에서 지속된다.
작품 전반 공히, 절제된 악보처럼 감성보다 이성이 두드러진다. 문장이 건조하다. 독자에겐 호불호가 될 테지만, 소재만큼은 독보적이다. 흔치 않은 시공간 속 인물을 대하는 태도의 교묘함이 있다. ‘작가의 말’인바, “견디는 삶의 가치”를 작가는 더 낯선 현장에서 증거하는 중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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