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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안 성수면 말궁굴재와 좌포터널. 산줄기 능선의 첫 안부가 말궁굴재, 사진 중앙의 산 아래 중앙에 좌포터널 입구
ⓒ 이완우
섬진강 상류 진안 성수면의 풍혈냉천(風穴冷泉) 지역 가까이에 말궁굴재가 있다. 말궁굴재는 성수면 좌포리와 용포리 사이의 대두산(大頭山 460m) 아래 산줄기 동영상제공 를 넘는 고개이다. '구르다'를 이 지역 사투리로 '궁글다, 궁굴다'라고 한다. 이 고개의 한자 이름도 마전치(馬轉峙)이므로, '말이 굴러서 넘어진 고개'라는 의미가 분명하다.
이 말궁굴재는 수십 년 동안 인적이 끊긴 잊힌 고개이다. 풀숲과 관목 식물의 잎과 덩굴이 겨우내 삭아지고 숲속의 초목이 아 장부가액 직 동면에서 깨어나기 직전이 잊힌 고갯길의 흔적을 찾기 쉬운 때이다. 봄기운이 제법 느껴지는 2월 말, 오전 이른 시간에 잊힌 고갯길을 찾아 나섰다. 섬진강 강변의 풍혈냉천에서 말궁굴재로 오르는 고갯길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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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안 풍혈냉천 지역의 너덜 바위
ⓒ 이완우
진안 성수면 좌포리 상가중개 와 용포리는 섬진강 상류가 감입곡류로 흐르는 지역이다. 좌포리의 양화 마을에서 용포리의 반룡 마을을 거쳐 포동 마을까지 섬진강 상류인 제룡강(濟龍江)이 흐른다.
호남정맥의 마루금인 만덕산(萬德山 766m)에서 파생된 산줄기에서 솟은 대두산이 강 건너 성수산을 바라보고 있다. 대두산에서 내려온 산기슭을 제룡강이 길이 3k 현대캐피탈 연체 m, 폭 1km의 커다란 물돌이동 지형을 휘감아 돌며 흘러 내려간다.
감입곡류로 강물이 흐르며 형성된 커다란 물돌이동 지형에는 강변을 따라 마을들을 이어가며 빙 돌아가는 도로가 나 있다. 진안 성수면 좌포리와 용포리의 물돌이동 산줄기 노루목(獐項 장항)을 가로질러 넘는 지름길이 말궁굴재 고개였다.
▲ ?왼쪽 위, 말궁굴재 옛 오르막길 흔적. 오른쪽 위, 말궁굴재 오르막길 지형의 너덜겅. 왼쪽 아래, 말궁굴재 고갯마루의 석축 흔적. 오른쪽 아래, 말궁굴재 고갯마루의 유문암 조각들
ⓒ 이완우
말궁굴재의 들머리가 되는 풍혈냉천 지역은 산비탈 너른 곳에 너덜 바위가 여기저기 분포되었다. 너덜 바위 지역은 지표에 노출된 커다란 절벽이나 바위의 절리(틈)로 물이 스며들어 결빙과 해빙을 거듭한다.
암석의 절리에 결빙이 얼음 쐐기 작용으로 틈새를 확대하면, 바위 조각들이 아래쪽으로 떨어져 내린다. 오랜 세월에 지나면 이 바위 조각들은 조금씩 이동하여 흘러내리는 너덜 지형을 형성한다.
이 너덜 바위가 얼기설기 얽혀 틈새 공간에 겨울 동안의 냉기가 축적된다. 깊은 곳에는 고인 물에 얼음이 얼어서 냉기를 보존한다. 너덜 바위틈 깊은 곳에 축적된 냉기가 위로 올라와 좁은 구멍에서 분출되며 바깥 기온에 접촉하면 단열냉각 현상으로 차가워진다.
▲ ?말궁굴재 오르막길의 풍화된 세일 암석
ⓒ 이완우
풍혈냉천 지역의 윗부분(해발 260m) 말궁굴재의 들머리로서 옛길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풍혈냉천 지역에서 비스듬히 말궁굴재까지 400m 거리는 완만한 오르막길이었다. 비탈면은 거의 45°도로 느껴질 정도로 가팔랐다.
말궁굴재의 오르막길은 지표면이 세일 부스러기로서 안정된 안식각으로 고정되지 않았다. 고개 오르막길 좁은 노면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세일 무더기가 바스러지며, 발바닥의 하중을 지탱하지 못하고 부서져 내리기도 했다.
아차! 한순간에 부스러지는 비탈면을 따라 몸이 넘어지며 1m 정도 미끄러져 내려갔다. 허리를 굽혀 자세를 낮추어 엉거주춤하며, 양손으로 버슬거리는 비탈면의 작은 관목 둥치를 가까스로 부여잡았다. 거북이가 마른 모래 언덕을 올라가듯 천천히 고갯길로 올라왔다. 위험한 순간이었다.
▲ ?말궁굴재 오르막길 아래의 제룡강
ⓒ 이완우
세일 부스러기가 쌓인 불안정한 안식각의 비탈면은 아랫쪽으로 수십m 계속되었고, 그 아래에는 제룡강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말궁굴재의 고갯길 오르막의 지표는 오랜 풍화를 거쳐 잘게 쪼개진 세일이 안식각을 찾아가며 불안정한 경사면으로, 아래로 보이지 않게 천천히 흘러내리는 형태의 지형이었다.
정녕 튼튼한 말도 쉽게 오르기 힘든 벼랑 같은 고갯길이었다. 등짐을 진 말이라면 한번 넘어지고 미끄러지면 걷잡을 수 없을 듯하였다. 고개 오르막길 응달에 남은 잔설에는 노루 발자국이 보였다.
잊힌 산길에 산짐승이 오가면서 옛길의 흔적을 보전하고 있었다. 가끔은 옛길이 끊어졌다. 쓰러진 고목 아래로 기어가며, 바위를 넘어서 앞으로 나가야 했다. 벼랑 같은 잊힌 옛 고갯길 탐방은 혼자서는 시도하지 못할 모험이었다.
길동무로서 고갯길 탐방을 안내한 향토역사탐구가인 김진영(임실 오수면)씨가 말했다. "마음속에 두고두고 새긴 고갯길을 이제 함께 넘어본다"라고. 호젓하고 험한 산기슭의 고갯길 탐방에는 길동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말궁굴재 고갯마루(해발 310m)가 가깝게 다가왔다. 고갯마루에는 급한 오르막 경사를 낮추기 위해 갈지 자 형상으로 길을 내었다. 고갯마루의 경사가 급한 양화마을 방향에는 필요한 곳에 쌓은 석축이 남아 있었다. 굴참나무 숲 사이로 제룡강이 내려다보였다.
고갯마루의 용포리 방향으로는 무너진 돌무덤(서낭당) 흔적이 보였다. 사기그릇 조각이 여러 개 발견되고, 석기 시대에 돌연장 재료로 활용되었던 유문암의 각진 형태 돌멩이들이 여기저기 찾아졌다.
▲ ?말궁굴재 고갯마루
ⓒ 이완우
말궁굴재 고갯마루에서 용포리 방향으로 내리막길 200m 거리는 훨씬 안전하였다. 산줄기는 넘는 말궁굴재 아래에 있는 좌포터널 입구에 도착하였다. 터널 차도 옆으로 튼실한 가드레일로 구분된 인도를 걸어서 터널을 통과하였다. 터널 내에는 조명 시설도 잘 되어 있었고, 위험하게 말궁굴재를 넘는 수고로움을 잊을 수 있었다.
좌포터널(해발 270~260m)은 2004년에 노루목에 해당하는 말궁굴재 아래의 산줄기를 뚫고, 진안 성수면 좌포리와 용포리를 연결했다. 745번 지방도로의 일부가 된 왕복 2차로인 좌포터널은 유효 폭 8m, 길이 259m이다.
진안읍에서 성수면 좌포리를 거쳐 이 터널을 통과하여 용포리를 지나서 임실 관촌을 거쳐 임실읍으로 가거나 전주시로 갈 수 있다. 말궁굴재가 옛날에는 임실과 진안 지역을 이어주는 교통의 요지였다.
▲ ?좌포터널 입구
ⓒ 이완우
▲ ?좌포터널 인도
ⓒ 이완우
풍혈냉천의 주차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풍혈과 냉천을 체험할 수 있게 축조된 소박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둘러보았다. 이곳 풍혈은 일 년 내내 영상 4℃의 일정한 찬 바람이 나오고, 냉천은 영상 3℃의 차가운 석간수가 솟아난다고 한다. 이곳 풍혈과 냉천의 일정하게 유지되는 찬바람과 석간수가 여름에는 차갑고 겨울에는 따듯하게 느껴진다.
풍혈냉천이 자리한 양화(陽化) 마을은 '겨울에 눈이 가장 먼저 녹는 마을'이라는 지형적 특징에서 유래하였다. 이곳 진안의 풍혈냉천은 1780년 무렵의 문헌에 처음 기록이 보인다고 하는데, 그보다 200년 전 허준(許浚, 1539~1615)이 약을 지을 때 이 냉천의 물을 썼다는 설화가 전해온다.
풍혈냉천 지역을 돌아다니며 여러 곳의 풍혈을 찾아보았다. 어떤 바위 구멍에 손을 넣으면 냉장고에 손을 넣는 것 같이 서늘하였다. 어느 풍혈은 바위가 얼기설기 모여진 틈으로 어른이 자세를 낮추어 걸어 들어갈 수 있는 크기도 있었다. 풍혈은 바위틈 깊은 곳에 축적된 냉기가 바람을 타고 올라와 좁은 바위틈으로 나오면서 바깥 기온에 접촉하며 단열냉각 현상이다.
눈이 덮인 곳에는 바람이 쌓인 눈을 녹이고 올라오고 있었다. 풍혈을 찾아보고 다니다가 어느 바위에 '風穴00' 네 글자를 발견하였다. 앞의 두 글자 풍혈(風穴)은 뚜렷한데, 끝의 두 글자는 풍화되어 분간이 어려웠다. 그러나 글자의 남아 있는 부분을 바탕으로 '風穴淞戰'(풍혈송전)으로 추정하여 보았다. 그러면 '풍혈에서 상고대 같은 서리 기운이 몸이 떨리듯이 피어난다'는 의미가 되었다.
▲ ?풍혈 지역 탐방, 깊은 풍혈을 관찰하고 있는 김진영 씨
ⓒ 이완우
여름 피서 관광지로 인기 있는 풍혈냉천 지역은 얼음골이기도 하다. 이곳 진안 성수면의 풍혈냉천 지역에도 예전에는 여름에 너덜 바위틈 아래에 얼음이 서렸었다고 한다. 풍혈냉천과 얼음골 등의 지질 형태는 빙기와 간빙기를 거듭한 빙하기(플라이스토세, 약 258만 년~1만 년 전 지질시대)에 형성된 주빙하성(周氷河性) 지질 유산이라고 한다.
풍혈냉천 지역은 빙하기 한랭한 기후에 적응하여 서식했던 한대성 식물종이 기온이 온난해진 현세(홀로세, 약 1만 년 전~현재)의 지질 시대에 서식하는 피난처로 기능한다고 한다. 진안의 풍혈냉천 지역과 이어진 대두산 말궁굴재에 한대성 식물이라는 굴참나무가 많이 눈에 띄었다.
진안 대두산 산기슭을 넘었던 옛 고갯길이었던 말궁굴재의 인상적인 이름에는 빙하 시대의 바위가 풍화되어 형성된 지질 형태의 역사가 반영되어 있었다. 진안의 말궁굴재, 말도 넘어지고 사람도 넘어지기 쉬웠던 오르막 고갯길 비탈면은 빙하 시대의 풍화된 지형을 체험하는 장소였던 셈이다.
진안 좌포터널을 자동차로 지날 때면 이 터널 위에 말궁굴재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 진안 대두산의 풍혈냉천 지형과 함께 말궁굴재 비탈길은 빙하기 주빙하성 자연 지질 유산으로 현재도 풍화 작용이 살아서 진행되고 있는 소중한 향토 유산임을 확인하였다.
▲ ?위쪽, 사람 한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규모의 풍혈. 아래쪽, 풍혈 주위의 풍혈 바람에 녹는 적설과 얼음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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