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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일본 도쿄 진보초에 있는 북카페 ‘책거리’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한국 시인의 시집을 사려는 손님들이 한꺼번에 몰려든 것이다. 이날 판매된 시집은 총 6권. 김혜순 시인 시집 중 유일하게 일본어로 번역(2021)된 ‘죽음의 자서전’이었다. 서점과 함께 한국문학 전문 출판사 ‘쿠온’을 운영하는 김승복(55) 대표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한겨레 기사를 번역해 읽은 사람들이 ‘소설 ‘소년이 온다’는 알지만 김혜순은 모르잖아?’ 하며 와서 시집을 사 갔다”며 “나도 소속학과 놀랐다, 시집으로는 하루 최다 매출”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날 시집 두권을 사간 나가타 긴지(80)는 “소설을 읽었고, 기사를 읽었기 때문에 시집에 관심을 더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21~26일 한겨레와의 서면 인터뷰에서다.
한겨레 기사는 한강 작가의 5·18 소재 소설 ‘소년이 온다’ 속 한 인물, 즉 계엄 창업대출이자 정부 아래 경찰에 뺨 일곱대를 맞는 편집자 김은숙이 실제 경험자인 시인 김혜순으로부터 탄생한 인물이란 사실을 처음 알렸다. 김 시인은 이 모멸과 저 존엄 사이를 당시 시(시집 ‘어느 별의 지옥’, 초판 1988년)에 눌러썼다. 내용뿐 아니라, 뺨 한대에 시 한편씩을 썼다는 연작시(‘그곳’ 6편)와 뺨 한대에 한 꼭지씩 이어나간 소설 3장(‘일곱개의 뺨’)은 잠시만요 영어 형식에서도 닮아 있다.
현역 세무사로 여전히 일하는 나가타는 시집을 읽고 난 뒤 “(폭력을) 현실 세계에서 받아들이면서 문학으로 승화시킨 시인의 혼신에 감동했다”며 “‘어느 별의 지옥’은 아직 일역이 안 되어 있는데 쿠온 출판사에 부탁해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시집이 어렵진 않았는가?
“죽음이란 곁 거치하다 에 있는 것이지만 늘 두려운 세계입니다. 그 세계를 다녀와 우리에게 이야기해주는 이가 없으니까요. ‘죽음의 자서전’을 눈으로 읽을 때와 소리 내어 읽을 때 느낌이 달랐어요. 소리 내어 읽을 때 더 가슴이 아팠습니다. 일본어로 번역된 시라서, 한국어로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습니다.”
나가타는 30년째 한국어를 공부 중인 ‘학생’으 국민은행 이자계산기 로, 동경한글학교(민단 동경코리안아카데미) 수업 중 관련 기사를 접했다. 닷새 뒤 수업(2월25일)에선 시집의 독후감을 발표하기도 했다. 제목이 ‘다음 김혜순 시인이 있다’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이후를 김 시인으로 가늠한 것이다.
나가타 긴지가 한겨레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자필로 쓴 내용. 그는 이런 내용의 독후감을 지난달 25일 한국어 수업 때 발표했다. 본인 제공
―시와 소설엔 과거 계엄·군사독재의 역사가 담겨 있다. 일본 독자들에게 이런 주제가 어떤 점에서 흥미로운가?
“민주화가 진행되는 과정에는 어느 나라고 아픔이 동반됐습니다. 작품을 통해 현재의 한국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문학 속 기록은 ‘캐릭터’가 있기에 오래 기억됩니다.”
나가타가 그간 읽은 한국문학 작품은 적지 않다. 일본인 여성 아사코와의 만남을 회고하는 피천득의 ‘인연’,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 등을 첫 인연 삼아, 2010년대 들어 한강의 ‘채식주의자’(2011년 일역)와 ‘소년이 온다’(2016년) 등까지 섭렵했다. 그는 “한국 신문 뉴스야말로 ‘지금’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알 수 있는 좋은 텍스트”라면서 “김혜순 시인도 이전 기사를 통해 이름은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나가타가 한국어를 공부하게 된 계기는 국세청 근무 시절, 일본어를 공부하는 한국 세무 관료(대사관)들을 보면서였다. 요즘은 한국어 입문 계기가 더 다채롭다. 동경한글학교 초급반에서는 초등학생과 엄마, 고등학생, 20대 딸과 엄마, 부부 등이 나란히 앉아 공부한다. 2003년 일본에 터 잡은 전소희(62) 강사는 한겨레에 “초등학생이 관심을 가질 정도로 한국어 수요는 계속 늘고 있다”며 “초등생 여자 어린이 경우, 엄마가 보는 드라마를 옆에서 보다가 한국 배우가 멋있다며 같이 배우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전 강사는 수업 중 한국문학 작품을 직접 강독하고 있다.
30년 지한파 나가타는 말했다. “일본도 젊은 세대들이 문학을 읽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오키상, 아쿠타가와상, 서점대상 등의 수상작들은 여전히 팔리고, 한국문학 작품 독자층도 상당해졌습니다. 두 나라의 문학 작품들이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것도 느껴집니다. 독자들이 점점 증가할 것으로 봅니다.”
그것이 미래에 대한 전망이라면, 현실은 이렇다. “한국문학이 이렇게 깊숙이 들어와 있어요.” 오는 7월이면 도쿄 도심 책방거리에 한국 전문 서점을 앉힌 지 꼬박 10년을 맞는 김승복 대표의 말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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