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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직원들은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고개를 숙였다. 전현직 인권위 직원들은 내란 공범이 되기를 단호히 거부한다. 국제사회의 모범적 사례였던 인권위가 급속히 몰락하고 있는 이유를 릴레이 기고를 통해 소상히 밝히고자 한다. <기자말>
[내란공범을 거부하는 전현직 인권위 직원 기자]
주부바꿔드림론
▲ 국민들께 호소하는 국가인권위원회를 지키는 직원들?국가인권위원회 직원들이 11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자 직업군인 ⓒ 이정민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조사관들은 사건을 배당받을 때, 진정인의 주장이 담긴 진정서를 제일 먼저 접한다. 조사관들은 진정서를 읽고 동료들과 간혹 이런 이야기를 한다.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이 사람이 예금금리계산기 원하는 게 뭘까요?'
여기서 '문제'는 절대적이지 않다. 윤석열의 문제와 우리의 문제가 천양지차인 지금 이 순간처럼, 문제는 각자의 지위와 관점에 따라 다르게 구성된다. 때로 그 차이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문제로 다가온다. 조사관은 우선 진정인의 관점에서 사안을 바라보도록 교 파일숨기기체크해제 육을 받는다. 진정인의 시각에서 겪은 부당함은 아직 조사관이 발견하지 못한 문제라고 간주한다. 이를 위해 다소 납득되지 않더라도 진정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설득한다. 이것이 인권위 조사관에게 필요한 자격이다.
그날, 나는 진공 상태였다
조사관은 인권침해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권한이 없다. 다만 조사결과보고서를 작성해 학자금대출거치 소위원회 안건으로 상정할 뿐이다. 나는 김용원씨가 위원장으로 있는 군인권보호위원회 조사관이었고, 동료 조사관들과 함께 공동 조사관 신분으로 박정훈 대령에 대한 인권침해 사건을 군인권보호위원회에 안건으로 상정했다. 그리고 김용원씨가 그 사건을 표결로 기각하던 순간을 목격했다.
"찬성이에요? 반대에요?"
김용원씨가 원민경 위원에게 되물었다. 담당 조사관이 여러 날 공들여 작성한 보고서에 대한 논의는 전혀 없었다. 제대로 된 토론도 없이 표결에 들어가려고 하자 원민경 위원이 정회를 요청했다. 소용없었다. "찬성이냐, 반대냐"는 김용원의 물음만 되풀이되었다. 원민경 위원이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김용원씨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 10초를 세겠다고 선언하고는 '찬성'과 '반대', 둘 중 하나만 답하라고 했다. 나는 김용원씨의 동료 인권위원에 대한 폭력과 무시, 그리고 그 자신이 권력 자체였던 상황을 조용히 목격했다.
나는 그때 견디기 힘든 무력감을 느꼈다. 안건 기각을 막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어차피 그것은 조사관의 권한 밖이다. 김용원씨가 휘두르는 폭력 앞에서 고개를 떨구었는데도 그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참기 힘들었다. 일어서서 무엇이라도 외쳐보고 싶었지만 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 공간에서 나는 진공 상태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소리는 공기와 같은 매질을 통해 전달되므로 나는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다.
동시에 내가 그동안 힘겹다고 여겨왔던 진정인들을 온전히 이해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들도 이렇게 세상과 대립하며 진공 상태나 다름없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분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김용원 같은 자들의 목소리는 쓸모없는 말이라도 권위를 두르고 '논리'와 '입장'이 되는데, 어째서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는 '악성 민원'이나 '정신질환'으로 귀결되는 것일까?
김용원씨가 대신하는 목소리의 실체
▲ 국가인권위원회 2차 전원위원회?김용원 국가인권위위원회 상임위원이 10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에서 열린 제2차 전원위원회에 참석해 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그날 나는 인권위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자신 앞에 놓인 '마이크'가 지닌 세상의 무게와 그 온당한 역할을 알지 못하는 김용원씨에게 더 이상 호소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인권위원은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하고, 인권위원 앞에 놓인 마이크는 아직 전달되지 않은 목소리들을 세상으로 내보내는 데 활용돼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내가 떠나기 전에도 떠난 뒤에도 김용원씨는 그 '마이크'의 진짜 역할을 알지 못한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김용원씨는 '윤석열 대통령 방어권 보장에 관한 안건'을 상정하고 이를 비판하는 이들에게 "내란 수괴라고 해도 인권이 있어요"는 말로 화답했다. 이는 전형적인 논리적 오류로 논점을 일탈한다. 언뜻 인권위가 모든 사람의 인권을 보장한다는 말은 합당하지만, '모든 이들'의 인권을 보장한다고 선언하는 역사와 맥락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인권위원이 최우선으로 고민해야 할 대상은 아직 '모든 이들'로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 도착하지 못한 사람들, '모든 이들'이 되지 못한 사람들이다.
대통령 윤석열은 이미 권력의 중심에 있다. 그는 이미 화려한 변호인단을 가지고 있고, 그들의 말을 곧장 활자로 새길 수 있는 영향력을 지녔다. 그는 극단적 지지자들을 등을 업고 우리 사회가 오랜 기간 합의해 온 언어의 의미와 용법 자체를 전복시키고 있다. 그런 자들이 이제 '인권'을 가져다 쓰고, 김용원씨는 인권위원이라는 지위를 사실상 흉기처럼 휘두르고 있다.
'진짜' 인권위원에게 바란다
오랫동안 건강 불평등을 연구해온 의사 김명희는 <가장 평범한 아픔>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각자가 경험하고 있는 문제들이 사실은 나만의 특별한 사연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 순간, 개인의 생애가 모여 사회의 역사가 되고 역사 속에 개인의 삶이 배태되어 있음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세상을 바꾸어나갈 힘과 의지를 얻게 된다."
인권의 역사가 그렇다. 누군가에게 닥친 불행이나 부당함이 단순히 그 개인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는 출발해왔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이야기, 말하고 싶지만 소리가 없는 이야기, 그저 아무 것도 못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찾아다니며 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국가인권위원회와 인권위원이 있어야 한다.
인권위원이 고작 개인의 영달이나 사회적 성취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3년 임기 동안 가장 낮고 보잘것없는 목소리, 소리조차 나지 않는 목소리를 듣기 위해 몸을 낮추고 현장을 누벼야 한다. 21세기 대한민국에 권력자나 변호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인권위원들은 불필요하다. 윤석열 방어권 보장 안건에 찬성한 김용원씨를 비롯한 6명의 위원들이 인권위를 떠나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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