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단구렁이 영문명 ‘파이톤(Python)’, 롤러코스터 단골명● 델피 신전 신화 속 큰 뱀 ‘피톤’서 따와● 피톤 시신 위 놓인 고대 그리스 중심 ‘옴팔로스’● ‘세상의 중심’이라는 의미로 전 세계 퍼져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가 그린 ‘아폴로와 피톤’. 영국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



2018년 6월 14일 인도네시아에서 길이가 7m에 달하는 비단구렁이가 밭일하던 '와 티바'라는 54세의 여성을 삼켜버리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저녁에 밭으로 일하러 나간 티바는 다음 날 아침이 돼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의 여동생이 밭으로 나가 보았지바다이야기pc버전다운
만, 언니 대신 그녀가 신었던 신발과 전등만 보였다.?

마을 주민 100여 명이 밭 주변을 샅샅이 수색했으나 티바는 찾을 수 없었다. 대신 티바의 신발이 있던 곳 근처에서 배가 불룩하게 튀어나온 비단구렁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주민들이 불길한 예감에 그 뱀을 잡아 배를 갈라 보니 놀랍게도 뱃속에 녀석이 통째로 삼킨 티바황금성게임종류
의 시신이 들어 있었다.
비단구렁이를 뜻하는 영단어 '파이톤(Python)'은 원래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왕뱀 '피톤'의 영어식 이름이다. 피톤은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혼자 낳은 자식이다. 신이 낳은 뱀은 가이아의 명령에 따라 그리스 코린트만 북부에 위치한 파르나소스(Parnassos)산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서 피톤은 최초로 인간들에알라딘게임공략법
게 신탁을 내리기 시작했다. 이후 신탁소의 주인은 두 번 바뀌었다. 피톤 다음으로 파르나소스산 신탁소를 맡은 인물은 법의 여신 테미스였다. 이후 테미스는 신탁소를 티탄족 여신 자매인 포이베(Phoibe)에게 넘겼다.?
주인이 바뀐 것은 피톤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피톤의 죽음에는 여러 가지 설화가 있다. 그중 대표 격이 티탄족 여신 레증권사선택
토(Leto)에 대한 이야기다. 피톤은 제우스의 아내 헤라의 부탁을 받고 레토를 해치우러 나선다. 레토가 제우스의 자식을 잉태했기 때문이다. 헤라의 진노가 무서워 아무도 레토를 숨겨주지 않았다.결국 레토는 그리스의 작은 섬 델로스(Delos)에 숨었다.?
피톤은 레토가 숨은 델로스섬을 뒤졌지만 그녀를 찾지 못했다. 피톤은 어쩔 수 없이 자황금성나비
신의 집인 파르나소스산으로 돌아갔다. 얼마 후 레토는 델로스섬에서 태양의 신 아폴론과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 쌍둥이 남매를 순산했다. 남매는 태어난 지 4일 만에 어머니 레토에게서 피톤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머니를 죽이려 한 뱀에게 분노한 남매는 원수를 갚겠다며 활을 들고 파르나소스산으로 달려갔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는 둘 다 그리스 신화 속 활의 명수다. 피톤은 그들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

신전 지키던 왕뱀 이름, 롤러코스터에 붙다그리스 신화를 정리한 고전 '비블리오테케(Bibliotheke)'에는 다른 이야기가 적혀 있다. 원래 파르나소스산에서 신탁을 내린 것은 피톤이 아니라 법의 여신 테미스였고, 피톤은 다만 그 성역을 지키는 파수꾼에 불과했을 뿐이라는 내용이다. '비블리오테케'는 그리스어로 '도서관'이라는 뜻인데, 이 책은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혹은 '그리스 신화'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있다.?

이 이야기 속 피톤도 아폴론의 화살에 죽는다. 티탄 신족과 벌인 전쟁에서 승리한 제우스는 아폴론에게 성역인 신탁소를 접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아폴론이 신탁소로 들어오자 성역을 지키는 파수꾼인 피톤이 완강하게 저항했다. 아폴론은 화살 100개를 쏴 피톤을 죽이고 신탁소를 강제로 점령했다. 그러고는 신탁소에 자신의 신전을 세웠다. 아폴론이 그곳에서 직접 신탁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그는 '피티아(Pythia)'라는 여사제를 뽑아 그 일을 대신 맡도록 했다.?
아폴론은 피톤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4년마다 '피티아 경기'를 개최하도록 했다. 파르나소스산의 신탁소는 처음에는 왕뱀 피톤의 이름을 따 '피토(Pytho)'라고 불렸다. 하지만 아폴론이 그곳을 점령한 뒤부터는 그 지명이 '델피'로 바뀌었다. '델피'의 복수는 '델포이(Delphoi)'인데 그리스어로 자궁을 뜻하는 '델피스(delphys)'에서 유래했다.?
그리스 신화 속 큰 뱀 피톤은 다양한 분야에 이름을 빌려줬다. 특히 테마파크 롤러코스터에 이 뱀의 이름이 자주 붙는다.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시내 '코니 아일랜드(Coney Island)'라는 테마파크의 롤러코스터 이름이 '파이톤'이다. 네덜란드 노르트브라반트(Noord-Brabant)주에 있는 테마파크 '에프텔링(Efteling)'의 롤러코스터 이름도 '파이톤'이다. 에프텔링의 전망대 '파고다(Pagode)'에서 바라본 '파이톤' 롤러코스터의 형태는 정말 세계에서 가장 긴 비단구렁이를 연상시킨다.
1969년에 창단해 1970년대 최전성기를 누린 영국의 세계적 코미디 팀 이름도 '몬티 파이슨(Monty Python)'이었다. 왜 이 코미디 팀은 하필이면 '파이슨(파이톤)'이라는 이름을 선택했을까. 그것은 롤러코스터에 그 이름을 붙인 것과 맥락을 같이했던 것 같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탈 때처럼 팬들에게 늘 신나는 웃음을 선사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네덜란드 최대 규모의 테마파크 에프텔링의 롤러코스터 ‘파이톤’. 에프텔링 홈페이지



세상의 중심 의미하는 돌, 옴파로스아폴론이 큰 뱀 피톤을 죽이고 자신의 신전을 세운 델피는 고대 그리스 세계의 정중앙이다. 제우스는 어느 날 세상의 한가운데가 어딘지 알아보기 위해 세상의 서쪽과 동쪽 끝 하늘에서 각각 독수리 두 마리를 동시에 날려 그들이 만난 공중 지점에서 지상으로 커다란 돌을 하나 떨어뜨렸다. 그 돌이 운석처럼 아래로 떨어져 도달한 곳이 바로 델피였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제우스가 떨어뜨린 돌을 '옴팔로스(Omphalos)' 부르며 신성하게 여겼다. 옴팔로스는 원래 배꼽이라는 뜻인데, 결국 '세상의 배꼽', 즉 '세상의 중심'이라는 뜻이다.

옴팔로스는 원래 델피의 아폴론 신전에 있었다. 정확히는 피티아가 삼발이 솥을 의자로 삼아 그 위에 앉아 신탁을 내리던 '아디톤(Adyton)'이라는 공간의 지하에 있었다. 아폴론은 바로 그 옴팔로스 밑에 자신이 죽인 피톤의 시신을 묻었다. 피티아가 앉아서 신탁을 내린 삼발이 솥 위에는 피톤의 가죽을 깔아줬다. 그래서 옴팔로스는 삼발이와 함께 피티아의 상징물처럼 여겨지고 있다. 옴팔로스는 세상의 한가운데임을 표시하는 돌이라는 것 이외에는 아직 더 정확한 용도가 밝혀진 게 없다. 로마의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면서 옴팔로스도 부숴버렸기 때문이다.?
델피에는 크로노스가 막내아들 제우스인 줄 알고 삼켰다가 게워낸 또 다른 돌도 전시돼 숭배를 받았다. 크기나 형태가 옴팔로스와 아주 비슷해서 사람들이 가끔 두 돌을 혼동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옴팔로스는 크로노스가 게워낸 바로 그 돌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건 억측에 불과하다.
고대 그리스의 여행작가이자 지리학자인 파우사니아스(Pausanias)는 "옴팔로스는 하늘과 지상과 지하를 서로 연결하는 세계의 축"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인지 고대에는 어느 문화권에나 옴팔로스가 있었다. 가령 고대 로마에서는 고대 로마 '중심광장(Foro Romano)'의 한가운데에 세워졌던 '도시의 배꼽'이라는 뜻의 '움빌리쿠스 우르비스(Umbilicus Urbis)'가 그 전통을 이어받았다. 이 돌을 기준으로 세계 각국의 다른 도시들과의 거리가 측정됐다. 돌 근처에 조그만 신전을 지어 신성하게 여기기도 했다.
델피의 옴팔로스는 현재 '델피 고고학박물관'에 전시돼 있지만 진품이 아니라 헬레니즘이나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복제품이다. 아폴론 신전으로 가는 길 끝자락에도 옴팔로스 모조품이 하나 세워져 있는데 모양새가 박물관에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박물관의 옴팔로스는 직사각형에 가까운 타원형이다. 겉은 털실을 둘둘 감은 것 같은 형태의 돋을새김으로 장식돼 있다. 신전으로 가는 길에 있는 옴팔로스 모조품은 끝이 뾰족한 원추형이며 겉도 밋밋하다.?



그리스 델피 고고학박물관에 전시된 옴팔로스 모조품.?델피 고고학박물관



파우사니아스의 저서 '그리스 여행기'에 따르면 옴팔로스는 원래 옷감으로 덮여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밖에 있는 것이 옷감 안에 있던 원형에 가까운 모양이고, 박물관에 전시된 모조품은 옷감으로 덮은 옴팔로스를 복제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옴팔로스 모조품이 신전 밖에 서 있는 이유도 있다. 고대에는 아폴론 신전에 참배객이 들어갈 수 없었다. 대신 모조 옴팔로스가 성소 곳곳에 몇 개 세워져 있었다. 지금의 모조품도 그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높다. 신전 밖에 있던 옴팔로스들은 도시국가들이 델피에 바친 봉헌물이라는 설도 있다.?




세계물산이 1990년 내놓은 의류 브랜드 ‘옴파로스’의 로고. 옴파로스



의류업계 중심을 노렸던 브랜드 옴파로스1894년 델피의 아폴론 신전 근처에서 발굴된 대리석 조각상에 새겨진 비문에는 아테네와 그 동맹국들이 기원전 330년경 델피의 아폴론 신에게 옴팔로스를 바쳤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조각상은 높이가 대략 13m쯤 되는데 크게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맨 밑에는 커다란 '아칸토스(Akanthos)'라는 식물의 잎사귀가 마치 활짝 핀 꽃처럼 원형으로 잎사귀를 넓게 펼치고 있다. 그 위에는 키가 1.95m에 달하는 여인 셋이 머리에 삼발이를 이고 춤을 추고 있다. 바로 그 삼발이 위에 옴팔로스가 얹혀 있다. 이 조각상은 그 생김새 때문에 '델피의 댄서(Dancers of Delphi)' 혹은 '아칸토스 기둥(Acanthus Column)'이라고 불린다. 현재 '델피 고고학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한국 패션 브랜드 중에는 '옴팔로스'에서 이름을 따온 '옴파로스'가 있다. "바람이고 싶어. 강물이고 싶어. 그대 기억 속에 그리움으로 남고 싶어. 옴파로스"라는 CM송이 기억에 남는 브랜드다. '옴파로스'는 '옴팔로스'의 우리식 발음이다.?
의류 브랜드 이름을 옴파로스로 지은 것은 원래 델피의 옴팔로스를 덮고 있던 옷감에서 힌트를 얻었을 수도 있겠지만, 아마 그 업계의 '옴팔로스'가 되고 싶은 열망이 더 컸으리라. 이름 덕택이었을까? '옴파로스'는 한때 전국에 100개의 매장을 가질 정도로 무서운 기세로 사세를 확장했다. 하지만 요즘은 무슨 영문인지 '옴파로스' 매장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자신이 사는 곳만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극도의 자기중심적 사고를 '옴팔로스 증후군(Omphalos Syndrome)'이라고 한다. 중국과 동의어로 쓰이는 '중화(中華)'가 세계 '문명의 중심'이라는 뜻이고,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Cusco)'가 잉카제국의 언어인 케추아어로 '배꼽'이라는 뜻인 것을 보면 고대 그리스인이나 로마인뿐 아니라 고대 중국인과 잉카인도 다소 옴팔로스 증후군에 빠져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김원익 문학박사·㈔세계신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