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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6월 주한 일본 공사로 부임해 온 하야시 곤스케(1860~1939)는 1906년 1월까지 이후 5년 반 동안 대한제국에 머물며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가 공사로 머무는 동안 러-일 전쟁이 진행됐고, 마침내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는 을사조약이 체결 미국 자동차 회사 됐다. 아시아역사자료센터 제공
고종이 1899년 7월 ‘대한제국 국제'를 반포하며 ‘절대군주권’을 확립하기 직전인 6월23일, 하야시 곤스케(1860~1939) 일본 공사가 가토 마스오의 후임으로 대한제국에 부임해 왔다. 한-일 근현대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문제적 인물’인 하야시는 이후 대학생임대아파트 을사조약(1905) 체결을 주도하는 등 일본의 한반도 침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그가 1935년 펴낸 회고록 ‘하야시 곤스케, 나의 70년을 말하다’에는 이 무렵 한반도를 둘러싼 러-일 대립의 실태를 보여주는 매우 흥미로운 일화가 기록돼 있다. 하야시가 부임하기 직전 일본 해군의 다무라 이요조 대좌(대령), 후쿠시마 아스마사, 나가오카 가이시 중좌 전세자금대출 중도상환 등 3명이 “송별회를 하고 싶다”는 연락을 해온다. 이들은 약속 자리에 나간 하야시에게 “긴히 부탁할 일이 있다”면서 손으로 그린 커다란 지도를 꺼내 펼쳤다. ‘천혜의 양항’이라 불리던 조선 남부 진해만 일대를 가리키며 “만약 이 주변을 러시아가 장악하게 되면 일본의 장래는 어려워진다. 당신이 공사로 가니 이를 (막아달라고) 부탁한다”고 말했다. 만약 러 개시결정 시아가 이곳에 해군기지를 건설한다면, 일본의 숨통이라 할 수 있는 대한해협의 제해권이 위험해질 수 있었다. 러시아 해군 역시 이곳의 ‘전략적 중요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1898년 3월 뤼순을 손에 넣은 상태에서 마산포까지 차지한다는 것은 일본과 직접 충돌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천만한 모험이었다. 미하일 무라비요프(1845~1900) 외무대 남양주별내지구분양일정 신은 1899년 6월10일 마산포를 획득해야 한다는 주장을 꺾지 않는 해군에게 비밀편지를 보내 러시아가 뤼순을 확보한 이상 “지금 한반도 내에서 평화적인 방식으로 거점을 차지할 순 없다”고 잘라 말했다. 때마침 뜻밖의 계기가 찾아온다. 대한제국이 1899년 5월1일 마산포를 개방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피오도르 두바소프(1845~1912) 러시아 태평양 함대 사령관은 알렉산드르 파블로프(1860~1923) 주한 러시아 공사와 3일 마산에서 만나 마산 자복포 해안에서 월영동에 이르는 지역의 땅을 사들이기로 한다. 러시아 해군이 마산포에 출현했다는 소식에 일본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하야시에 따르면 “부임 후 2년이 될 무렵”(기억의 착오인 듯 보임. 실제로는 부임 직후) 도쿄에서 러시아 함대가 “진해만 부근에 와 있다”는 전보를 보내왔다. 마침 인천 영사 시절부터 안면이 있던 박제순(1858~1916) 외부대신이 그를 찾아왔다. 하야시는 모든 사정을 다 안다는 듯 앞서 해군에서 받은 지도를 박제순 앞에서 크게 펼쳤다. “러시아가 요구하고 있는 지점은 어디인가?” 박제순은 “비밀을 지켜야 한다”면서도 마산포 부근을 손으로 짚었다. 일본은 자국 상인의 도움을 받아 러시아가 노리던 땅을 잽싸게 가로챈다.
박제순(1858~1916) 대한제국 외부대신은 하야시 곤스케 일본 공사에게 러시아가 마산포의 땅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슬쩍 알려준다. 이 정보를 토대로 일본은 러시아가 노리던 땅을 가로챌 수 있었다. 영화 ‘파묘’에 나오는 친일파 귀신 박근현은 박제순을 모델로 했을 가능성이 있다. ‘을사오적’ 중 하나로 역사에 기록돼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러시아가 뤼순에 만족하지 않고 조선 남부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는 사실에 일본은 큰 충격을 받았다. 1898년 4월 체결된 로젠-니시 협정 이후 러·일은 한반도 문제에 직접 간섭을 자제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대한제국이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한 ‘견고한 평화'가 아닌 러·일이 잠정적으로 도달한 ‘일시적 타협'에 불과했다. 이 상황을 유지하려면 하루빨리 국력을 키워 러·일이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은 더 이상 대한제국의 편이 아니었다.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러-일의 균형을 깨뜨린 충격은 만주에서 시작됐다. 러시아는 1891년 시작한 시베리아 횡단철도 부설공사를 구실 삼아 만주에서 세력을 급격히 키워가고 있었다. 이 철도가 완공되면 러시아 제국의 끝과 끝을 불과 10일 만에 이을 수 있었다. 러시아의 병력과 물자 이동 속도가 빨라지면 동아시아 힘의 균형 역시 단숨에 뒤바뀌게 될 터였다. 일본은 이 움직임을 극도로 경계했지만, 러시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본선 부설에 만족하지 않고 청의 영토인 만주를 관통하는 ‘최단거리의 지선'을 놓으려 했다. 이를 위해 1896년 6월 청에 대한 방위 의무를 지는 비밀 동맹조약을 체결하며 치타~하얼빈~블라디보스토크를 잇는 동청철도의 부설권을 손에 넣었다. 1898년 5월엔 동청철도와, 얼마 전 손에 넣은 랴오둥 반도 끝의 두 도시인 다롄(상업항)·뤼순(군항)을 잇는 철도를 놓을 권리도 확보했다. 뤼순~펑톈~하얼빈을 잇는 이 지선엔 훗날 ‘남만주 철도'라는 이름이 붙게 된다. 1899년 8월 뤼순·다롄은 ‘관동주’란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묶이고, 예브게니 알렉세예프(1843~1917)가 이 지역의 군사령관 겸 태평양함대 사령관으로 임명됐다. 이 시점에서 마침내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짓는 ‘지정학적 핵폭탄’이 터졌다. 청일전쟁 패배 이후 서양 열강에 의한 중국 침탈이 본격화되자 ‘부청멸양'(扶淸滅洋)을 내건 ‘의화단’이란 무리가 1899년 봄부터 산둥성 등에서 교회와 선교사 등을 습격하기 시작한다. 난리가 심해지자 영국·미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 5개국 공사는 1900년 3월10일 청에 의화단 진압을 요구하며, 그렇지 않으면 거류민 보호를 위해 ‘필요한 조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청의 실권자 서태후는 국내의 반외세 열기를 받아안아 6월21일 거꾸로 서구 열강에 선전포고하는 초강경 대응에 나선다.
1900년 의화단 사건이 발생하자 가쓰라 다로(1848~1913) 육군대신은 이를 일본이 서구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일등국’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였다. 그는 회고록인 ‘가쓰라 다로 자전’에 일본이 처음 서양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의화단 진압을 위한 8개국 연합군에 참여하게 된 감격을 “이번 일은 장래 동양의 패권을 장악하는 단서가 될 것이다”라고 적었다. 일본국립국회도서관 제공
서구 열강 7개국에 일본을 더한 8개국은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남아프리카의 ‘보어 전쟁'에 발이 묶여 있던 영국은 6월23일, 7월5일, 7월14일 등 세번이나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일본에 출병을 요청했다. 이 무렵 일본 육군대신은 훗날 일본의 총리로 한국병합을 단행하게 되는 가쓰라 다로(1848~1913)였다. 그는 훗날 펴낸 ‘가쓰라 다로 자전’에 서양 열강과 처음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일본인의 감격을 절제된 필치로 적었다. “일본이 이런 동맹에 참여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충분한 결심과 충분한 주의를 가져야 한다. (이 일은) 장래 동양의 패권을 장악하는 단서가 될 것이다.” 8월6일 시작된 베이징 공격에 동원된 8개국 연합군 1만3500명 가운데 일본군은 6500명(48.1%)이었다. 의화단이 동청철도를 공격하며 전쟁은 만주로 확대됐다. 러시아의 ‘2인자’ 세르게이 비테 재무상은 7월8일 ‘철도 보호’를 명분으로 군대 파견을 요청했다. 러시아군은 잔인하고 과감한 군사 작전에 나서 10월2일 만주 전역을 손아귀에 넣었다.
청의 수도인 베이징 주변에서 의화단 사건이 나 난리가 났음은 대한제국에도 잘 전해지고 있었다. 1900년 6월16일치 ‘제국신문’ 지면에도 관련 기사를 확인할 수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고종이 의화단 사건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1900년 2월께로 추정된다. 그는 2월7일 오후 4시께 찾아온 하야시에게 “이 일이 동양 화근의 근원이 될까 염려된다”면서 “확실한 정보를 가급적 그때마다 알려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하야시가 ‘확실한 정보’를 들고 고종을 찾아온 것은 아오키 슈조 외무대신이 보낸 6월8일과 13일 전문을 통해 사실관계를 파악한 직후인 14일이었다. 불행한 사태가 닥쳐올 것임을 직감한 고종은 6월25일 외국 공사들을 불러들여 조언을 구했다. 하야시는 “현 상황에서 한국이 유념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서울뿐 아니라 각 지방에서 황제 폐하의 백성들이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현장의 하야시는 몸이 달았다. 7월5일 전문에서 “만주 일대는 의심의 여지 없이 러시아의 소유로 귀착될 것”이라며 “인천에 군함을 상주해 두면, 경성 이남은 저절로 우리 영역으로 귀속될 것”이라고 적었다. 18일엔 더 적극적으로 “한국에서 일본의 이익을 지키고 강화하는 방도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했고, 23일엔 “만주가 러시아의 수중에 들어갈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며 “우리의 청국·한국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하야시가 언급한 일본의 한국 정책은 ‘러시아가 만주를 손에 넣은 이상 한반도는 일본의 몫이 되어야 한다’는 만한교환론으로 구체화된다. 이 생각을 체계적으로 제시한 이는 을미사변(1895)의 사후처리를 위해 조선에 왔었던 고무라 주타로 주러 공사였다. 그는 22일 아오키에게 보낸 영문 전문에서 “최선의 길은 세력 획정을 제안하는 것이다. 일·러가 각각 조선과 만주에서 프리핸드(free hand·제약 없이)를 갖고 각자 세력 영역 안에서 서로의 상업적인 자유”를 가져야 한다고 적었다. 10년 전 ‘조선은 일본의 이익선'이라고 선언했던 야마가타 아리토모 총리는 8월20일 ‘북청사변 선후책’이란 제목의 문서에서 “이번 북청사변(의화단 사건)을 기회로 조선 전부를 우리 세력 구역으로 삼고, 러시아의 만주 경영을 방해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려 한다. 북방경영의 (방)책은 실로 이것에 다름 아니다”고 밝혔다. 야마가타는 한반도 전체를 얻을 수 없다면 ‘원산~대동강 선’(북위 39도)에서 타협할 생각도 있었지만 ‘교활’한 러시아가 응할지 알 수 없었다. 이 냉혹한 계산 과정에 어엿한 독립국이었던 대한제국에 대한 고려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길윤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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